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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40주년 Minority Report]"뭐가 어때요?" 부모는 '둘'…사랑은 '큰 하나'

한부모 가정의 삶은 고단하다. 엄마 혼자, 아빠 혼자 생업과 가사노동, 자녀교육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두 아이를 둔 이혼 3년차 싱글맘 A씨는 "혼자 투잡을 뛰고 집에 돌아와 저녁상 차리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절로 눈물이 난다"며 "제발 누가 아이들 픽업만이라도 도와줬으면 싶을 때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주변의 편견이나 막연한 죄책감과도 싸워야 한다. 혼자 딸을 키우는 B씨는 "어머니와 아이 고모가 많은 도움을 주는 데도 부족함이 느껴진다"며 "학교 선생님에게 아이가 위축돼 있고 친구들에게도 예민하게 군다는 말을 듣고 괜히 내 탓인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고 한숨을 내쉰다. 미혼모의 경우는 더 심하다. 유치원생 아들을 둔 미혼모 C씨는 "엄마들 모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물론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을까봐 우리 아들과 놀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도 있다고 들었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아이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이혼한 어머니, 누나와 함께 사는 D군은 "폭력적 아빠 때문에 두 분이 이혼만 하면 모든 게 행복해 질 줄 알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며 "경제적 타격, 아빠에 대한 그리움, 힘들어 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일, 나 혼자 이혼 가정 출신 외톨이가 된 듯한 기분에 늘 우울했다"고 나름의 아픔을 전했다. 대부분의 한부모 가정 구성원들이 되도록 가정사를 감춘 채 숨죽이며 살길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려는 싱글맘, 싱글대디들의 적극적 노력과 움직임이 한인 사회에서도 점차 눈에 띄고 있다. 자체적 연대와 신앙 공동체의 도움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 인식을 바꿔 나가려는 적극적 노력이다. 올해로 18년째 한부모 가족축제를 개최해 온 LA온누리교회 한부모 담당 김경희 전도사는 "지난 몇 년사이 축제에 참여하는 연령대가 대폭 젊어졌다"며 "한부모 가정이란 사실을 숨기기만 했던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도사는 "한부모 가정은 이혼이나 사별의 아픔은 물론 신분이나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한부모 가정 자녀 수기 모집을 통해 아이들에게 정서적 힐링을 제공하고, 교회 내 장학금 제도로 경제적 지원도 받는 등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한부모들이 많아진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도 진단했다. 또한 "이를 통해 부부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돌아가던 교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한부모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도 차츰 바뀌어가는 것도 바람직한 변화"라고 말했다. 2010년부터 뉴욕·뉴저지 지역을 중심으로 한인 싱글맘 모임인 '한부모 협회(SPA)'를 조직, 운영하고 있는 황미미 회장은 최근 LA 지역에도 자체적 모임이 생겨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 중이다. 황 회장은 "한인 싱글맘 인터넷 카페 회원 중 80% 가량이 LA지역 거주자들인데 많은 분들이 SPA와 같은 모임을 바라고 있다"며 "기회만 된다면 그 동안 동부에서 해온 그룹 토크 노하우나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고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SPA는 매달 1회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싱글맘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서로에게 감정적 지지와 유대감을 심어주는 데 활동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황 회장은 "모임을 통해 싱글맘들이 서로 '둘이서도 힘든 육아를 혼자서 잘 해 내는 것이 정말 멋진일'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당당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며 "더 나아가 한인 사회 전체가 한부모 가정 자녀들이 건강하고 자랑스런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축복하고 응원해주는 분위기로 바뀌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7년간 비영리단체 '가정을세우는사람들'을 이끌어 온 금병달 목사, 금정진 사모는 한부모 가정이 보다 건강하고 건설적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부모용 '디보스 케어(Divorce Care)'와 자녀용 '디보스 케어 포 키즈(Divore Care 4 Kids)'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금정진 사모는 "한글로 번역한 자료와 DVD 등이 15개 한인 교회로 보급되는 등 점차 건강한 홀로서기를 하려는 한부모 가정 구성원들의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며 "프로그램을 통해 소외 의식 대신 공동체 의식을 갖고 확대 가정을 꾸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지난 과오를 돌아보고 성장해가려는 노력이 한인 사회에서도 좋은 결실을 맺어가는 듯 하다"고 진단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한부모 가정이란 사실을 알려 교사의 도움을 청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LA통합교육구 한 교사는 "예전엔 한부모 가정이란 사실을 알려 오는 한인들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엔 먼저 교사에게 이를 알리고 싱글맘들끼리 따로 모임을 갖는 분들도 확연히 늘었다"며 "아이에게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고 싱글맘들끼리 정보 교환도 잘 되는 것 같아 교사 입장에선 반갑고 고마운 일"이라고 귀띔했다. ☞숫자로 본 한부모 가정 ▶24,647,000 (35%) 2013년 기준 미국내 한부모 가정 자녀수 (출처 내셔널 키즈 카운트National KIDS COUNT) ▶356,000 (44%) 2013년 기준 LA시 한부모 가정 자녀수 (출처 내셔널 키즈 카운트National KIDS COUNT) ▶4,100,000 2013년 기준 미국내 빈곤층 한부모 가정수 (출처 US 센서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14-12-07

[창간 40주년 특별기획-Minority Report] "같은 고충 사람들과 허심탄회 대화로 풀어야"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심하면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는 "감정적 학대나 모멸감이 심해지고 이 상황이 지속되면 그 스트레스 때문에 소화도 안 되고 잠도 못 잔다.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한다"며 "더 심해질 경우는 공황장애이나 우울증이 생기고 극단적일 경우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24440명을 대상으로 벌인 '감정노동 종사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8.3%가 우울감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7.5% 자살을 생각해 봤고 0.5%는 실제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만철 전문의는 "우선 같은 직종에 일하는 동료끼리 서포트 그룹을 만들어 억울한 일을 토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좋다. 또 관리자 입장에서는 대책을 마련해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문제가 심각할 경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조 전문의는 "증세가 너무 심할 때는 카운슬링과 함께 약물치료를 받고 진단서를 받아서 1~2주 정도 쉬는 것도 좋다. 정신질환이 심해질 경우 직장상해보험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2014-11-30

[창간 40주년 특별기획-Minority Report] "상냥한 친절의 끝은 멸시인가요?"

# "공감이 가죠, 왜 안 가요. 그 사람 심정 이해가 갑니다. 단지 조금 더 참았으면 좋았을걸…안타깝죠." 두 달여전 한국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분신 자살한 경비원을 두고 이원종(가명)씨가 하는 말이다. 이씨 역시 12년째 LA의 한 건물에서 경비일을 맡아보고 있다. 주된 업무는 주차장 관리. 하루 종일 야외주차장에 서서 수백명의 직원과 방문객들을 응대해야 한다.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울컥 목이 메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말도 못하지…" "우선 방문객이 오면 주차관리를 위해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데, 물어보는 거 자체를 싫어하세요. 대답하기 싫다는 짜증이 목소리에 묻어있죠. 그리고 대부분 말을 짧게 하죠. 아예 무시하고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반말을 기본이고요. 그들에게 제 나이 같은 건 전혀 상관없지요. 아들뻘 아니 손자뻘이 되는 사람들에게도 저는 그저 경비원일 뿐인 겁니다." 나이를 감안해 '어르신'하고 불러주는 사람은 100명에 1명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올해 75세다. "내가 담배를 못 끊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담배라도 피우면서 그 연기에라도 스트레스 날려버려야지, 아니면 못 견딥니다." 그렇게 그는 참아낸다. #유니티 부동산의 자넷 권씨. 디즈니사에서 일하다가 부동산 에이전트로 전향한지 14년째다. 세월이 더해질 때마다 커리어도 쌓여가고 그만큼 프로의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아무리 프로의식을 갖고 일해도 고객들을 상대하는 것은 녹록치가 않다. 몇달동안 성심성의껏 일을 했지만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을 해버릴 때는 배신감마저 들지만 불평도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좁은 바닥에서 자칫 소문이라도 잘못나면 일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자괴감에 빠질때도 있다. 집사처럼 부리는 고객들을 상대할 때다. 어떤 고객은 마켓에서 고추장을 사다달라, 제과점에서 빵을 사다달라, 여행 갈 때면 강아지 밥을 챙겨달라, 아이들을 학교에서 픽업해 달라는 등의 잔심부름도 요구한다. 고객만족시대고 아무리 자부심을 갖고 일하지만 그저 좋게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들에게는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감정이다. 철저히 숨겨야 한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가는 밥줄이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위 '감정노동자'들이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산업이 고도화되고 서비스업종이 증가하면서 등장한 노동의 형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며 일상적인 직무를 봐야한다. 1983년 캘리포니아주립대 앨리 러셀 혹쉴드 교수의 '관리된 심장-감정의 상품화'라는 저서에 처음으로 사용됐다. 지난해 포스코의 한 임원이 '라면을 끓여주지 않는다'며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은 감정노동자들이 처한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발생한 경비원의 죽음도 같은 맥락이다. 이 사건은 아파트 입주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한 경비원이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리고 자살을 하면서 불거졌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면 자신의 생명까지 사지로 던질 수 있는 것일까. 미주한인사회 역시 위의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식당에서 일하는 서버부터 영업사원, 콜센터 상담원, 마켓 점원, 부동산 에이전트, 항공기 승무원, 미용사 등의 수많은 사람이 감정노동자로서의 고충을 감당하고 있다. 감정노동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서비스 업종에서 두드러진다. 한인마켓의 종사자들은 억지를 부리거나 이유 없는 트집을 부리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또 대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보다는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고객들도 많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한다. "30대 중반의 한 남성고객이 본인보다 10살은 많은 여성 점원에게 막말을 퍼부어서 수습을 한 적이 있었다. 정말 씁쓸했던 건 그 고객이 퍼붓고 돌아서며 웃더라. 그저 소리 지르며 스트레스 한번 푼 거다. 그들은 퍼부으면 그만이겠지만 그 막말을 듣는 점원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는다."(마켓 매니저) 텔레마케팅이나 전화업무를 보는 쪽에서는 감정노동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전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 업체에서는 상담원들이 4~6시간 동안 200~30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다. 애당초 예의는 바라지 않는다. 조금만 늦게 전화를 받아도 화를 내고 일부는 욕을 내 뱉는다. 술주정하는 고객도 있다. 특히 상담원 목소리가 어리다고 판단하면 반말은 기본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애써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상담원들은 못내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오수연 기자

2014-11-30

'하루 버틴다'에 만족하는 지독한 가난의 무게

#. 지난 10일 오후 7시30분 부에나파크 지역 링컨 애비뉴와 놋 애비뉴 인근 엘도라도 인. 이곳은 저소득층 주민들이 정부 보조의 주택 바우처를 받아 생활하는 지역이다. 홈리스 및 저소득층 자녀의 애프터스쿨 사역을 담당하는 무지개가족선교회 이지혜 대표는 "이 지역에는 현재 500여 가구 이상의 주민들이 정보 보조를 받아가며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1가구를 4인 가족 기준으로 계산한다면 적어도 이 부근에서 한인을 비롯한 약 2000여 명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 사는 신윤정(53·가명)씨는 남편을 병으로 잃고 홀로 살아가고 있다. 정부 지원의 푸드스탬프와 봉사기관 등이 제공하는 식료품 등을 지급받는다. 신씨의 집에는 맨바닥에 깐 전기장판과 이불, 약간의 취사도구만 있을 뿐이다. 신윤정 씨는 "신장이 좋지 않아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며 살아간다"며 "몸이 너무 아플 때는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한국 정서 때문인지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은 싫다"고 전했다. 현재 무지개선교회 이지혜 대표는 이 지역 극빈층 아이들을 위해 애프터스쿨 사역을 펼치고 있다. 이지혜 대표는 "이 지역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 10여 명을 매일 오후 2시쯤 픽업을 해서 선교회에서 숙제도 봐주고 스낵도 제공하면서 6시까지 돌봐주고 있다"며 "그외에도 집이 없는 몇몇 가정들을 돌보고 있는데 최근 수년간은 한인 노숙자들도 많이 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극빈가정을 위한 애프터스쿨에 다니는 유나(9·가명) 양은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한다. 엄마는 유방에 난 종양으로 병치레 중이어서 유나 양이 7살짜리 동생까지 돌보고 있다. 유나양은 "엄마가 많이 아프기 때문에 주로 집 청소나 심부름 같은 것은 내가 다 하고 있다"며 "물론 많이 힘들지만 엄마가 빨리 병이 나아서 엄마와 함께 놀이공원에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 한인 뿐 아니라 타인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2일 오전 9시 LA한인타운 인근 홈디포 센터.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손가락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자리를 찾는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특히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호세 리말도(34)씨는 "이번 주에 계속 일을 못 구했는데 오늘도 선택받지 못한다면 간단한 식료품을 사는 것조차 어려워진다"며 "불법 신분에 영어도 잘 못하기 때문에 이삿짐을 나르거나 공사현장에 나가는 등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당 10달러를 받는다. 일을 구하지 못하는 날에는 햄버거 하나 사먹는 것도 쉽지 않다. 홈디포 앞 일용직 노동자들은 "예전에는 보통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일을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주일을 그대로 허탕 칠 때도 많다"고 푸념했다. 라모스 카에르토(29)씨는 "매일 100여 명 가량의 일용직 노동자가 홈디포 앞에 몰려든다"며 "멕시코에서 함께 건너온 친구 4명이 원 베드룸 아파트에서 모여 사는데 렌트비를 겨우 내고 난 뒤 멀리 있는 가족에게 생활비 일부를 보내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별로 없어서 힘들게 살고 있다"고 전했다. 장열 기자

2014-11-23

탈북동포 100여 명…조선족 8000여 명

▶탈북동포는 LA 인근에 1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미주 전체적으로는 400여 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지난 2004년 북한 인권법을 제정 한 후 탈북민의 난민 지위를 심사, 그동안 170여 명의 망명을 인정했다. 이들에게는 영주권을 발급해 미국 정착을 돕고 있다. 나머지 탈북동포들은 일단 남한을 거쳤다가 유학이나 취업, 관광 등의 형태로 미국에 온 케이스들이다. 지난 97년부터 탈북자를 지원해 온 재미탈북자지원센터의 로베르토 홍 회장(변호사)은 지원센터에 이름을 올린 탈북동포는 80~90명 정도가 된다고 밝혔다. LA의 탈북동포 대부분이 탈북자지원센터와 한 번쯤은 관련을 맺고 있는 셈이다. 홍 회장은 90명 중 60~70명은 남한을 거쳐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남한을 거쳐 온 탈북동포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보니, 내부적으로 조금의 알력도 있는 듯 하다는 게 홍 회장의 설명이다. ▶조선족은 LA 및 남가주 일원에 약 7000~8000명이 된다는게 가주중국조선족동포연합회 장성수 회장의 말이다. 미국 전체로는 약 10만 명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이전만 해도 LA 인근에 사는 조선족은 수 백명 수준이었으나 이후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개방정책이 가속화하면서 조선족의 도미 행렬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조선족의 미국행은 예전에는 브로커를 통해 3만~5만 달러나 되는 돈을 들여 왔지만 요즘은 유학, 관광, 사업비자 등의 발급이 수월해 진 탓에 인구가 대폭 늘고 있다는 게 장 회장의 설명이다. 김문호 기자

2014-11-16

꿈을 갖고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입니다

#유향순대 전 사장 김철씨 부부 · "우리 부부가 꼭 다시 일어서 탈북형제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게 해 주세요." 지난 13일 오전, 탈북동포가 주로 출석하는 LA한인타운 빛나라 교회에서는 한 부부의 간절한 기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탈북동포 김철-김정희 부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과 노먼디 코너에 유향순대를 운영하며 '사장님' 소리를 듣던 커플이다. 탈북동포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롤모델이었다. 특히, 김철씨는 북한을 탈출한 지 20년이 지났고, 미국생활 경험만도 10년 이상이라 자본주의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동포들에게는 '교과서'와도 같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경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김씨 부부는 지난 여름께 4년간 유지해 온 식당을 접고 말았다. 탈북한 노동당 외화벌이꾼과 여군 출신으로 지난 2000년 남한에서 만나 결혼하고 2002년 도미 후 8년이란 세월을 고생한 끝에 장만한 식당이었다. "실망이 컸죠. 한동안 일할 의욕도 내지 못했어요." 그러나 부부는 오래지 않아 마음을 추스르고 교회를 찾아 기도하면서 다시 한 번 힘을 내기로 했다. 김철씨는 스시맨, 부인은 남의 식당 주방일을 돕고 있다. 신앙이 돈독한 부부는 아침에는 식당일이 없는 탓에 주일은 물론이고 주중에도 교회를 주로 찾는다. 비슷한 처지의 탈북동포를 만나면 인사도 하고 함께 성공을 다짐하는 이야기도 나눈다. 김철씨는 "탈북동포들에게 미국생활은 큰 충격이다. 영어도 안 되고 기술도 없이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사실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 덥썩 물었다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며 "탈북동포들이 한인사회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탓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가 빨리 자리를 잡고 탈북동포를 돕겠다며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탈북동포와 한인사회에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철씨는 "탈북동포들은 다들 열심히 살려고 한다. 다만, 초반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런 도움을 한인사회에서 줄 수 있다면 마음을 열고 한인사회 일원으로 기꺼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족 제일교회 손윤철 목사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 혜림이 고향인 손윤철(작은사진) 목사. 손 목사는 LA한인타운 3가와 베렌도 북쪽 코너에 있는 조선족제일교회 담임이다. 중국에서부터 목사 공부를 했고, 안수까지 받았기 때문에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올해로 미국에 온 지 7년 째인 손 목사는 두 명의 중·고생과 아내 4식구를 건사해야 하지만 마침 든든한 후원자까지 만나 조선족 중심의 개척교회를 이끌며 복음을 전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더 좋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 온 다른 조선족 동포들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2~3개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안정됐다. 하지만 손 목사에게도 고민이 있다. 한인타운에서 개척교회를 하면서 한 차례 '실패'를 맛본 탓이다. "올림픽길 쪽에서 다른 교회를 했지요. 조선족도 오고 탈북자나 다른 한인들도 왔는데 이들을 하나로 엮는다는 게 참 쉽지 않더라구요. 살아 온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지요." 손 목사는 이후 지금의 장소로 옮겨 당장은 조선족만을 상대로 목회를 다시 시작했다. 아직은 규모가 작아 조선족 10여 명이 출석하는 정도라, 틈틈이 후원자 일도 도우면서 '또 다른 우리'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조선족은 중국말을 하지만 차이나타운에서 살아갈 수 없어요. 민족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탈북자들과도 성장환경이 달라 어울림에 한계가 있어요. 다만, 탈북자나 조선족은 한인타운을 떠나 살기 어렵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한인사회가 이들을 껴안을 수만 있다면 한민족으로 동화하는 과정을 단축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고 밝혔다. 그런 이유로 손 목사는 요즘 다시 탈북자, 한인 교인을 수용하려는 시도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문호 기자

201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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